Belfry @beffroi.bsky.social · 28/07/2025영국에선 사람들과 있을 때 저 혼자 우산을 꺼내면 넌 설탕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니 녹지 않는다(you’re not made of sugar; you won’t melt)는 말을 매번 듣습니다(…) 찾아보니 독일, 네덜란드, 핀란드 등 북부 유럽 전역에서 하는 관용어인 듯. 비슷한 관용어로는 홍차에 설탕을 타고 있을 때마다 듣는 “넌 충분히 달콤하니까 설탕을 더 먹을 필요가 없어 (you’re sweet enough; you don’t need more sugar)”. 021
Belfry @beffroi.bsky.social · 28/07/2025현대에 지어진 게 아닌 이상 영국 집들은 바람이 새고 단열이 안 돼서 추운데, 일부러 그렇게 지은 겁니다. 바람이 새야 환기가 되고 건강한 거라고 믿어서요. 바람이 새 서늘한 방에서 벽난로의 열로 얼굴이 붉어진 것이 건강한 영국인의 모습이기 때문이죠. 온돌에 익숙한 한국인에겐 극약… 021
Belfry @beffroi.bsky.social · 06/07/2025셰익스피어와 당대인들에게 로미오와 줄리엣이 주는 메세지는 비극이라기보단 아마 ‘쯧쯧 요즘 어린 것들 + 저 무능한 *카톨릭* 신부 + 아니 부모는 뭐했대 + 세상에 저 어린애한테 + 성욕에 이성을 놔버리면 안되지’에 가까웠을 거라(…) 현대 한국인이 고딩엄빠나 비윤리적 종교인을 보는 느낌...? 특히 이 시기엔 무능하고 부패한 카톨릭이라는 부정적인 프로파간다가 양산되던 시기라. 077
Belfry @beffroi.bsky.social · 05/07/2025무엇보다 가정을 꾸리기 전에 경제적으로 독립을 할 수 없으면 마을사람들이 나서서라도 결혼을 막았기 때문에 17세기 평균 결혼 연령은 남녀 모두 25살 위였고, 영국 역사를 통틀어 21살 아래로 떨어진 적은 없다. 물론 상위계급은 다른 얘기. (2/2) 11312
Belfry @beffroi.bsky.social · 05/07/2025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줄리엣은 '아직 14살이 안 된' 것으로 나온다. 이건 영국인들이 십대 초반에 결혼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는 게 아니라, 둘의 사랑이 어린시절의 치기인 것을 강조한다. 중근세시기 대부분 여자는 12살, 남자는 14살이 법적으로 결혼할 수 있는 최소연령이었다. 이는 최소연령이라는 것이지, 흔했다거나 당연했다는 뜻은 아니다. 1763년 결혼법에서 부모 동의 없이 결혼할 수 있는 연령이 21살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17세기에도 여자가 16살 전에 결혼과 임신, 출산을 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됐다. (1/2) 11515
Belfry @beffroi.bsky.social · 05/07/2025혹은 긴 겨울밤 추운 기숙사에 모여 자던 하인들의 풍습이 하나의 관습으로 자리잡은 것이라는 설도 있다. 특히 노르웨이와 웨일스에서 그랬다는 듯. 참고자료: Stone, Lawrence. (1977) The family, sex and marriage in England, 1500-1800. 특히 제 12장, Plebeian Sexual Behaviour. (3/3) 005
Belfry @beffroi.bsky.social · 05/07/2025Bundling의 목적은 깊은 대화를 통해 서로의 마음과 성격을 배우고, 평균 결혼 연령이 높던 사회에서 결혼 전 성욕을 어느정도 충족하는 것이기도 했다. 19세기 말 프랑스에서 Bundling은 키스와 애무, 그리고 주로 여자가 남자에게 해주는 수음을 포함했다. 다만 그 기원을 불분명한데, 켈트족 문화라는 설도 있고, 17세기 후반부터 결혼이 사랑에 기반을 두고,가내수공업 등으로 젊은이들의 경제적 독립성이 높아지면서 생긴 풍습이라는 설도 있다. (2/3) 105
Belfry @beffroi.bsky.social · 05/07/2025중근세 북서부 유럽에는 일본의 요바이와 비슷한 풍습이 있었다. Bundling은 구애중인 남녀가 한 침대에서 옷을 반쯤 벗고 밤새도록 대화를 나누며 서로를 알아가던 것을 뜻한다. 영국 및 독일, 네덜란드, 프랑스 일부 지역 등에 성행하던 풍습으로, 이민자들과 함께 미국으로도 건너갔다. 다만 임신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적었다. 18세기 웨일스에서 남자는 '중요한 부분의 옷'은 갖춰입었고, 여자는 '속치마를 미끄럼 매듭으로 고정'하는 식으로 정절을 지켰고, 미국에서는 나무판을 두 사람 사이에 두기도 했다. (1/3) 139
Belfry @beffroi.bsky.social · 11/06/2025참고자료: Chandler, Alice. (1975) “‘A pair of fine eyes’: Jane Austen’s Treatment of Sex.” Studies in the Novel 7(1): 88-103. Heydt-Stevenson, Jill. (2000) “‘Slipping into the Ha-Ha’: Bawdy Humor and Body Politics in Jane Austen’s Novels." Nineteenth-Century Literature 55(3):309-39. 이하생략 (5/5) 001
Belfry @beffroi.bsky.social · 11/06/2025수은이 함유된 약을 먹고 땀을 흘리며 밍밍하고 부드러운 음식을 먹는 것은 당대에 널리 알려졌던 매독 치료법이다. 혹시라도 독자들이 놓칠까 걱정했는지 제인 오스틴은 우드하우스씨가 "키티, 차가운 처녀(하녀) Kitty, a fair but frozen maid"라는 수수께끼를 떠올리려 하다 실패하고 엠마와 헤리엇이 찾아보고 스크랩북에 옮겨적는 것을 묘사한다. 이 수수께끼는 당대 유행했던 매독에 관한 말장난이다. (4/5) 112
Belfry @beffroi.bsky.social · 11/06/2025메리는 "[함대의] 후방(엉덩이)과 부도덕은 충분히 봤어요. 자, 제가 말장난을 한다고 생각하지는 마세요 (Of Rears and Vices, I saw enough. Now, do not be suspecting me of a pun, I entreat)."라고 한다. 이 시기 영국 해군은 동성애로 유명했기에 뼈가 있는 농담이다. 엠마에서 엠마의 아버지 우드하우스씨는 매독에 걸렸다고 암시된다. 우드하우스씨는 건강염려증이 있고, 추위를 많이 타 한여름에도 불가에 있으며, 묽은 죽을 가장 좋아한다고 묘사되는데, (3/5) 102
Belfry @beffroi.bsky.social · 11/06/2025(I am afraid you do not like your pen. Let me mend it for you. I mend pens remarkably well)." 펜(pen)은 남성 성기(penis)를 은유하는 표현으로도 쓰였다. 이에 대한 다아시의 답은 "고맙습니다 - 하지만 전 언제나 제 걸 스스로 고쳐요 (Thank you—but I always mend my own)." 즉, 본인은 늘 자위로 해결한다는 것. 맨스필드 파크에서 메리 크로퍼드가 해군에 대해 한 농담은 더 직설적이다. (2/5) 102
Belfry @beffroi.bsky.social · 11/06/2025제인 오스틴의 일반적인 독자들, 적어도 한국 독자들은 제인 오스틴의 소설들이 성적으로 문란한 농담들로 가득 차있다는 것을 잘 눈치채지 못하는 것 같다. 당장 오만과 편견에서 캐롤라인 빙리가 다아시에게 '펜을 고쳐주겠다'고 말하는 부분은 핸드잡(수음)을 제안하는 것으로 읽을 수 있다. 원문은 "펜이 마음에 들지 않나봐요. 제가 고치게 해줘요. 저는 펜을 정말 잘 고친답니다 (1/5) 153
Belfry @beffroi.bsky.social · 22/05/2025with green ornaments, which convinces me of what I had always supposed, that green was a favourite colour with her.)" 반대로 "엘리자베스는 노란색을 입었을 거 (I dare say Mrs. D. will be in yellow)"라고. 저 초상화는 해리엇 퀜틴(Harriet Quentin)의 것으로, 조지 4세의 정부였다. 책에서는 너무 정숙하다고 묘사된 제인 베넷이 왕의 정부를 닮았을 거라고 한 것이 흥미롭다. (2/2)themorgan.orgWilliam BlakeIn her letter dated 24 May, 1813 (MA 977.31), Austen reports seeing a painting of how she imagines Jane Bennet, who marries Mr. Bingley at the conclusion of Pride and Prejudice. "Mrs Bingley is exactl... 012
Belfry @beffroi.bsky.social · 22/05/2025오만과 편견에서 베넷가 자매들 중 가장 아름답다고 묘사된 제인 베넷의 초상화. 제인 오스틴의 편지에 의하면 "몸집, 얼굴형, 이목구비, 온화함; 이보다 더 닮은 것은 없었다(size, shaped face, features, and sweetness; there never was a greater likeness.)"라고. "그녀는 흰 드레스에 녹색 장식을 입었는데, 늘 생각해왔던 대로, 녹색은 그녀가 제일 좋아하는 색이었다는 것을 확신했다(She is dressed in a white gown, (1/2) 112
Belfry @beffroi.bsky.social · 22/05/2025참고자료: Appel, Peter A. A Funhouse Mirror of Law: The Entailment in Jane Austen’s Pride and Prejudice. Georgia Journal of International and Comparative Law 41.3 (2013): 609–36. (7/7) 001
Belfry @beffroi.bsky.social · 22/05/2025그렇다면 이에 드는 서류작업과 비용, 시간 등이 아까워서 언급조차 하지 않은 것일까? 아니면, 본인이 비웃는 가족과 이웃만큼이나 베넷씨의 식견과 경험이 얕아서 몰랐던 것일까? 소설 속 대부분에서 베넷씨는 아내와 딸들을 피해 서재에 숨어서 귀찮아질 일은 회피하는 것으로 나온다. 어느 쪽이든, 베넷부인을 위해서라도 적어도 소설이 끝난 후 빙리와 다아시가 베넷씨를 도와 한사 상속을 무효화했길 바랄 수밖에 없다. (6/7) 112
Belfry @beffroi.bsky.social · 22/05/2025다른 가능성은 오스틴도, 독자도 한사 상속이 깨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는 거고, 그게 베넷씨라는 인물에 아이러니와 깊이를 더한다는 것이다. 시골 변호사의 딸인 베넷 부인은 Common Recovery를 몰랐을 가능성이 크고, 한사 상속이 적용되지도 않는 가재도구(goods and chattels)도 없이 쫓겨날 거라고 믿는 것에서 베넷 부인은 한사 상속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도 모른다는 것이 그 무지를 증명한다. 하지만 베넷씨는 교육받은 신사계급이다. (5/7) 111
Belfry @beffroi.bsky.social · 22/05/2025이는 베넷부인을 더 절박하게 만드는 것과 동시에 베넷가 자매들이 결혼을 잘 할 확률을 낮추는 원인인 한사 상속이 쉽게 깰 수 있는 거라면, 왜 소설 속 아무도 언급하지 않을까? 한가지 가능성은 제인 오스틴도, 독자들도 한사 상속이 무효화 할 수 있는 것을 몰랐다는 것이다. 현대에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법이 정확히 어떻게 작용하고 어떤 허점이 있는지 잘 모르기에 신빙성있는 설이다. 다만 한사상속은 아주 흔하지 않아도 드문 것도 아니었고, 제인 오스틴은 글을 쓰기 전에 조사를 철저하게 하는 성격이었으니 확신할 수 없다. (4/7) 111
Belfry @beffroi.bsky.social · 22/05/2025 엄격 계승은 몇 세대마다 동의를 해야하는 대신 이미 동의된 세대 내에서는 무효화하기 어려웠다. 다만 그만큼 직계 아들이 안 태어날 경우라던가 딸들이나 장자 외의 아들들이 받을 수 있는 유산을 미리 엄격하게 정해놓았다. 그런 언급이 없다는 것과 리디아가 결혼한 후 위컴이 받을 돈이 베넷씨 생전으로 한정된다는 것이 엄격 계승은 아니었을 것을 암시한다. 오만과 편견의 전제, 즉 베넷씨 사후 베넷가의 자매들과 어머니는 ‘맨몸’으로 지참금도 없이 쫓겨날 위험에 처해있으며, (3/7) 112
Belfry @beffroi.bsky.social · 22/05/2025한사 상속은 집과 토지와 같은 부동산을 조각내지 않고 가족 내에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 보통 남자 직계로 한정 상속했다. 베넷가에 아들이 태어나지 않아 남자 직계가 끊어지면서 방계인 콜린스씨가 상속인으로 예정된 (heir apparent) 것. 다만 한사 상속 재산권은, 변호사들의 도움을 받아 Common Recovery라는 법적 연극으로 꽤나 쉽게 무효화할 수 있었다. 물론 베넷가의 재산이 한사 상속이 아닌 엄격계승적 부동산처분권(strict settlement)에 묶였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2/7) 112
Belfry @beffroi.bsky.social · 22/05/2025오만과 편견에서 베넷씨는 아내, 딸들, 그리고 이웃들의 어리석음을 한발짝 떨어져서 비웃는 것이 낙인 인물로 묘사된다. 다만 현대의 독자들이 눈치채기 어려운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베넷씨 본인의 어리석음이 소설의 전제가 된다는 것이다. 베넷부인은 베넷씨의 사후 콜린스씨에 의해 딸들과 함께 집에서 내쳐져 가난 속에서 살 것이라는 두려움에 딸들을 결혼시키는 것에 여념이 없다. 이는 베넷씨의 집과 땅이 한사 상속 재산권(entail; fee tail)에 의해 콜린스씨에게 상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1/7) 104
Belfry @beffroi.bsky.social · 10/05/2025근데 산업혁명과 수로의 개통으로 이 상황이 반전돼요. 임금도 싸고 석탄도 많은 북부에서 광산이며 공장들이 일어나고, 남부의 경제는 빠르게 몰락합니다. 지금까지 무시해왔던 북부, 무시해온 평민들이 갑자기 많은 재산을 들고 상류사회로 진출하려 하니 주로 남부에 있던 전통적인 땅을 가진 신사계급(landed gentry)의 반감도 이해가 가죠. (3/3) 041
Belfry @beffroi.bsky.social · 10/05/2025수도인 런던과 멀고 날씨가 나빠서 농사가 쉽지 않아 그 크기에 비해 19세기 초까지도 영국 인구의 사분의 일 정도만 살았습니다. 인구가 적다보니 의회에 북부 출신 의원도 적었습니다. 튜더 시대 프로파간다에는 배은망덕하고 반항적이고 뒤떨어진 곳으로 묘사돼요. 보수적이라서 카톨릭이 마지막까지 강세했던 곳이기도 하고요. 영국 남부는 농산물의 생산량도 높고 수도와 가까워서 늘 경제적으로 풍족했습니다. (2/3) 131
Belfry @beffroi.bsky.social · 10/05/2025사실 산업혁명 시기 산업/상업으로 돈을 번 신흥 부자들을 향한 멸시에는 로마시대까지 올라가는 지역감정도 섞여있습니다. 영국 북부는 전통적으로 트렌트 강(River Trent) 위를 가리켰는데, 사회문화적으로는 컴벌랜드, 더럼, 랭카셔, 노섬벌랜드, 웨스트모얼랜드, 요크셔 (Cumberland, Durham, Lancashire, Northumberland, Westmoreland, and Yorkshire)죠. (1/3) 121
Belfry @beffroi.bsky.social · 10/05/2025종종 아이들의 이름을 직계 가족이 아니라 대부모의 이름을 따서 지어주는 경우도 있었는데, 특히나 대부모가 부자이거나 유력자인 경우 더더욱 그랬습니다. 위컴의 이름이 조지라는 것과 다아시의 여동생의 이름이 조지아나라는 건 당대 사람들에게 다아시의 아버지의 이름이 조지였을 거라는 것을 암시했겠죠. (2/2) 012
Belfry @beffroi.bsky.social · 10/05/2025다아시의 이름은 피츠윌리엄(Fitzwilliam)으로, 어머니의 결혼 전 성이기도 하죠. 보통 관습적으로 장자는 아버지나 친할아버지, 장녀는 어머니나 외할머니의 이름을 물려받던 것이 당대의 관습이었습니다. 다아시의 이름은 그의 어머니의 귀족적 혈통과 백작의 딸을 아내로 맞은 것에 대한 그의 아버지의 자랑스러움을 드러내요. (1/2) 122
Belfry @beffroi.bsky.social · 10/05/2025근데 캐롤라인 빙리는 친밀한 관계가 아니면서도 엘리자베스를 ‘엘라이자양(Miss Eliza)’이라고 불러요. 엘리자베스는 유난히 긴 이름이기 때문에 줄이는 게 흔하지만, 몇 번 만나지도 않았으면서 줄여 부르는 건 무례함과 아님의 경계에 있습니다. 이 건 캐롤라인의 무례하고 불쾌한 성격을 강조하는 역할을 해요. 이에 청혼 직후 다아시가 처음으로 ‘내 가장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엘리자베스(dearest, loveliest Elizabeth)라고 경칭 없이 부른 것이 두 사람 사이 자라난 깊은 애정과 친밀감을 나타냅니다. (3/3) 041
Belfry @beffroi.bsky.social · 10/05/2025성을 떼고 ‘엘리자베스양(Miss Elizabeth)’이라고 부르고, 다른 사람들에게 얘기할 때는 ‘사촌 엘리자베스 (Cousin Elizabeth)’라고 언급합니다. 제인과 약혼한 후 빙리씨는 엘리자베스를 ‘리지(Lizzy)’라고 부르기 시작하는데, 형부로서 엘리자베스와 가족이 됐기 때문이죠. 제인이 첫째 딸로서 ‘베넷양(Miss Bennet)’이라고 불릴 자격이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엘리자베스 베넷양(Miss Elizabeth Bennet)’이라고 성과 이름을 붙여 부릅니다. (2/3) 122
Belfry @beffroi.bsky.social · 10/05/202520세기를 지나며 사장되다시피 한 관습이지만, 영국에서는 원래 이름을 가볍게 부르지 않았습니다. 요즘도 사립학교 학생들은 서로를 성으로 부르죠. 다아시와 빙리가 서로를 성으로 부르듯이요. 오만과 편견에서 엘리자베스는 여러 이름으로 불립니다. 우선 가족들에게는 어린 시절부터의 애칭일 ‘리지(Lizzy)'죠. 엘리자베스는 너무 길고 중후하니까요. 가까이 사는 친한 친구인 샬롯 루카스와 그 가족은 ‘엘라이자(Eliza’)라고 불러요. 애칭이지만, ‘리지’ 정도의 친밀감은 없어요. 먼 친척인 콜린스씨는 친척으로서 친밀감이 있어서 (1/3) 121
Belfry @beffroi.bsky.social · 08/05/2025다만 파멜라는 예외적인 경우이고, 야만인들이나 보통 하층계급 사람들은 이런 고결함과 고상함을 지니지 않았기 때문에 사랑과 존중을 나눌 수 있는 대상은 같은 계급 내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된 거죠. 물론 사랑없이 물질적인 면만 고려한 결혼이 없었다는 건 아닙니다. 샬롯 루카스처럼요. 이혼이 불가능하고 재산권과 법인격이 남편에게 있던 시절이니 여자들은 특히나 남편이 본인과 가족을 부양해줄 수 있는지 고려해야 했고요. 다만 이런 결혼은 낮잡아봐졌고, 그런 의미에서 오만과 편견의 이야기는 그 시대 여성들의 희망을 상징합니다. (3/3) 001
Belfry @beffroi.bsky.social · 08/05/2025감성의 시대 (Age of Sensibility (1745–1798))를 불러온 소설 파멜라 (Pamela; or, Virtue Rewarded)에서 파멜라는 하녀고, 신사계급(gentry)인 고용주의 관심에서 도망치려고 하죠. 계속되는 성추행과 납치에서도 파멜라는 정절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요. 그리고 이 과정에서 연약한 신경과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계속 기절합니다. 파멜라가 보여준 이 고결한 미덕과 섬세한 신경이 입증하는 그녀의 고상함(gentility)이 B씨의 마음을 감복시키고 둘은 결혼합니다. (2/3) 101
Belfry @beffroi.bsky.social · 08/05/2025영국인들에게 사랑은 모든 것을 정복하는 (omnia vincit amor)것이 아니라서 하녀와 사랑에 빠져서 결혼하는 것도 곱게 봐줬다거나 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결혼은 사랑과 존중이 기반되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보았고, 이왕 사랑에 빠져야 한다면 좀 더 적절한 상대와 빠지려고 했다는 겁니다. 재산과 지위가 맞고, 존중받을만한(respectable) 가정을 꾸릴 상대와요. (1/3) 101
Belfry @beffroi.bsky.social · 07/05/2025이 시절에는 풍부한 감성과 예민한 신경이 상위계급을 하위계급의 사람들로부터 구별하는 고상한 특징이라고 보았습니다. 첫 영국 소설 중 하나로 일컬어지는 사뮤엘 존슨의 파멜라(Pamela; or, Virtue Rewarded)에서 여주인공은 끊임없이 감정에 복받쳐 기절해요. 이런 분위기를 비꼰 것이 제인 오스틴의 다른 소설 이성과 감성이죠. 베넷 부인이 본인의 예민한 신경에 집착하는 것은 본인의 원래 계급에 대한 열등감의 표출이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2/2) 032
Belfry @beffroi.bsky.social · 07/05/2025오만과 편견 배경 설명: 1. 오만과 편견을 통틀어 ‘사랑’에 의한 결혼을 강조하는 것은 이 시대에서 로맨스가 일종의 문명과 교화의 상징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랑으로 결혼을 하는 것은 그들이 도덕심, 연민, 감수성을 가졌다는 것을 보여줬죠. 반대로 야만인들은 이런 세련된 감정을 느끼지 못해서 사랑으로 결혼을 하지 못한다고 생각됐습니다. 2. 베넷 부인은 작중 계속 본인의 예민한 신경(poor nerves)에 대해 불평해요. 이는 18세기 중후반이 감성의 시대(Age of Sensibility)였기 때문입니다. (1/2) 113
Belfry @beffroi.bsky.social · 07/05/2025만약 빙리가 다아시와 같은 학교를 다녔고 다아시의 잔심부름꾼으로 배정되었었다면, 다아시가 빙리를 향해 보이는 과보호적인 성향과 빙리가 다아시에게 보이는 존경심이 설명됩니다. (5/5) 051
Belfry @beffroi.bsky.social · 07/05/2025이 시기 사립학교들에는 반장-잔심부름꾼 시스템(prefect-fagging system)이 확립되어 있었습니다. 해리 포터에서 론의 형 퍼시가 반장이었죠. 막 입학한 하급생들은 상급생들 중에서 뽑힌 반장들에게 배정돼 구두에 광을 내주고, 차를 타오고, 방을 청소해주는 등 잔심부름을 했습니다. 반장들은 대신 이 하급생들을 돌보고 매를 써서라도 제대로 처신하게 만들 의무가 있었고요. 물론 이 시스템은 악용의 여지가 컸고, 많은 하급생들이 학대당했지만, 다아시는 이런 의무를 악용했을 성격은 아니죠. (4/5) 142
Belfry @beffroi.bsky.social · 07/05/2025이러한 빙리의 배경은 어머니가 백작의 딸이고 더비셔에 광활한 영지가 있는 다아시와는 상당한 계급의 차이가 있습니다. 겹치는 지인이 적었을 거에요. 또 다른 힌트는 작중에서 묘사되는 둘의 관계입니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빙리는 다아시를 우러러보며 조언을 받죠. 겨우 네댓 살 차이가 나는데 다아시가 빙리를 계속 돌보아왔다는 분위기입니다. 단순히 나이와 계급의 문제일까요? 가장 높은 가능성은 둘이 같은 사립학교(public school)를 다녔다는 겁니다. (3/5) 121
Belfry @beffroi.bsky.social · 07/05/2025다아시의 과묵하고 내성적인 성격으로 보아 성인이 된 후 사교 클럽 등에서 친해졌을 가능성도 적죠. 빙리가는 상업으로 재산을 얻었고, 아버지가 영지를 사려 했으나 사지 못했으며 런던에 집이 없다는 묘사로 보아 아버지대까지는 상인 계급이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영국 북부에서 왔다는 설명은 작중 배경인 산업혁명 시기로 미루어보아 빙리가의 재산이 공장이나 광산, 무역에서 왔다는 것을 암시해요. 큰 재산을 얻은 지 얼마 안 되었기에 교양이 없어서 딸들의 교육을 런던의 사립학교에 맡길 수밖에 없었겠죠. (2/5) 121
Belfry @beffroi.bsky.social · 07/05/2025다아시와 빙리는 어떻게 친구가 됐을까요? 제인 오스틴은 둘이 친구가 된 과정에 대해 설명하지 않지만 추측은 가능합니다. 네더필드와 왔을 때 빙리는 아직 23살이 안 됐다(had not been of age two years)고 묘사되죠. 다아시는 26-7살정도입니다. 둘의 나이 차로 봤을 때 대학에서 만나 친구가 되진 않았을 거에요. 또한 다아시의 사촌 피츠윌리엄 대령이나 집사의 아들 위컴이 빙리를 잘 모른다는 것을 보아 둘은 어린시절부터 친구는 아니었을 거로 보입니다. (1/5) 163
Belfry @beffroi.bsky.social · 07/05/2025Merians, L. E. The Secret Malady: Venereal Disease in Eighteenth-century Britain and France. 1996 Siena, Kevin P. (1998) Pollution, Promiscuity, and the Pox: English Venereology and the Early Modern Medical Discourse on Social and Sexual Danger. Journal of the History of Sexuality, 8:4. (6/6) 001
Belfry @beffroi.bsky.social · 07/05/2025이 중 확실한 정답으로 정해진 건 아직 없습니다. 다만 DNA, 역사, 고고학적 연구가 계속되고 있으니 답이 나올 수도 있겠죠. 하지만 아마 라마를 수간해서 생긴 건 아닐 겁니다. (5/6) 간략한 참고자료: K. Majander et al.(2024) Redefining the treponemal history through pre-Columbian genomes from Brazil. Nature 627, 182–188. 102
Belfry @beffroi.bsky.social · 07/05/2025다만 매독균은 매독 뿐 아니라, 풍토성 매독(베젤), 매종(요스)도 유발하고, 이 둘은 딱히 성병이 아니에요. 아이들이 많이 걸리는 피부병에 가깝습니다. 이제 여기서 가능한 이론이 몇 있어요. 1. 정설대로 신대륙에서 건너온 성병이다. 2. 인류의 조상과 함께 베링 해협을 건넌 오래된 질병으로, 신대륙과 구대륙 모두에 있었다. 3. 신대륙에서 건너온 건 맞지만 피부병이었으며, 후에 유럽에서 성병으로 발현한다. 4. 원래 유럽에 있었지만 피부병이었고, 15세기에 전쟁, 기근, 군대 등 혼란한 상황에서 성병으로 발현한다. (4/6) 116
Belfry @beffroi.bsky.social · 07/05/202518세기 무렵에는 매독과 임질이 같은 병이며, 초기엔 임질, 그 후로 매독으로 악화된다는 게 정설로 받아들여집니다. 이렇듯 정확한 검진이 어려웠으니, 반대로 생각하면 1495년 전 유럽의 임질에 대한 기록이 사실 매독에 대한 기록일 가능성도 생기는 거죠. 매독균이 재밌는 건 뼈에도 흔적을 남긴다는 건데, 그런 질병이 드물어서 매독으로 죽은 사람의 뼈는 쉽게 알아볼 수 있어요. 실제로 고고학자들이 이미 16세기 전 무덤들에서 매독균에 의해 변형된 뼈들을 찾아내면서 혼란이 가중됩니다. (3/6) 114
Belfry @beffroi.bsky.social · 07/05/2025다만 너무 높은 사망률과 빠른 증상 발현은 병을 널리 퍼뜨리는 데에 도움이 안 돼서 (코가 떨어지고 성기가 문드러진 사람과 보통 성관계를 맺지 않죠) 발현 속도와 사망률이 곧 현저하게 떨어집니다. 근데 이 시기에는 지금처럼 정확한 검진을 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성병이란 걸 알아도 정확히 뭔지 판단하는 게 어려웠다는 게 문젭니다. 16세기 초 파라셀수스라는 유명한 의사가 매독을 프랑스 임질(French gonorrhea)이라고 부른 후 둘은 같은 병으로 생각됩니다. (2/6) 102
Belfry @beffroi.bsky.social · 07/05/2025인류에 대한 희망을 잃기 전에 말씀드리자면 매독이 라마를 수간해서 나온 결과라는 이론은 재밌긴 하지만 아주 신빙성 있는 이론은 아닙니다. 매독의 기원은 지금까지도 논쟁의 대상이고, 신대륙에서 기원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매독이 신대륙에서 기원했다고 믿은 이유는 이탈리아 전쟁 (1494년-1498년)에 매독 창궐 전 매독에 관한 기록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시기 매독은 지금과 달라서 심하면 몇주만에 죽게 했기 때문에 그 충격이 더욱 컸죠. (1/6) 1616
Belfry @beffroi.bsky.social · 06/05/2025에드워드(Edward)라는 이름 하나를 에드(Ed), 네드(Ned), 테드(Ted) 하는 식으로 운율을 맞춰서 변주를 주면 재미도 있고 사람을 구별하기도 편헸겠죠. 하지만 원래 운율을 맞춰 노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니 이렇게까지 변주가 많아진 거겠죠. 18-9세기에도 Bouts Rimés라는 게임이 유행합니다. 17세기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한쪽이 운율이 맞는 단어들을 주면 다른쪽이 그걸로 시를 지어서 응수하는 그런 교양있는 놀이죠. 가만히 둬도 이러고 노는 사람들이라 별명도 굳이 그런식으로 즐긴 거라 생각하면 됩니다. (3/3) 01215
Belfry @beffroi.bsky.social · 06/05/2025쉽게 말하면 양쪽이 운율 맞춘 랩을 하면서 싸우는 거라고 보면 돼요. 이런 전통이 이어져선지 원래 운율을 맞추는 걸 좋아하는 민족이긴 합니다. 15-16세기 튜더 영국에 새들에게 운율이 맞는 사람 이름을 붙이는 게 유행한 적도 있죠. 사람 이름도 그때쯤부터 운율 맞춘 별명이 유행했습니다. 특히 성경과 성인에서만 이름을 따오는 것도 모자라서, 보통 가족 내에서는 대대로 몇개의 이름을 돌려써서 그렇습니다. 자식은 여럿 낳던 시절에 남자 이름은 두세개, 여자 이름도 두세개를 돌려쓰면 누구를 지칭하는지 혼란스러워지기 쉽죠. (2/3) 1813
Belfry @beffroi.bsky.social · 06/05/2025러시아권보다는 이해하기 쉽지만 영어권 별명이 이 꼴이 난 것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한정된 이름들 (성경에 나오거나 성인들의 이름들)을 돌려쓰다보니 구별할 필요가 있어서고요. 다른 하나는 운율을 맞추며 노는 문화권이라 그렇습니다. 중세 영국과 스칸디나비아에는 Flyting이라고 두사람이 일종의 운율을 맞춘 시로 서로 모욕하고 논쟁을 하는 의례가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Lokasenna에서 로키가 다른 신들과 하는 말다툼이 이런 거죠. 영국의 고대 서사시 베오울프에도 싸움 전에 하는 의례로 나옵니다. (1/3) 11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