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이루왕 @eeruwang.it.21stcentury.day.ap.brid.gy · 14h꾸역꾸역 다읽었다. 윤리랑 정치 부분은 내일 다시 읽어야지 library.eeruwang.me/book/CAA50439library.eeruwang.meLaruelleAlexander R. Galloway · Philosophy · 2014 · 304/304 pages 000 0
생각하는 이루왕 @eeruwang.it.21stcentury.day.ap.brid.gy · 15h갑자기 웃긴생각. 소식하라는 이야기가 내장을 그만큼 소화하는데 덜 쓰니까 그만큼 에너지를 덜 쓰고 그래서 사용할수록 소비되는 기관들을 더 오래쓸 수 있으니까 장수하는 거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거시기를 자르면 대략 7년 정도가 늘어난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그럼 머리를 자르면 몇년이 늘어날까 (???) 000 0
생각하는 이루왕 @eeruwang.it.21stcentury.day.ap.brid.gy · 15h저번에 보니까 문의 메일 답장도 없고 이미 돌아가신 작가라 웹사이트 관리 안되고 있을 것 같은데... 000 0
생각하는 이루왕 @eeruwang.it.21stcentury.day.ap.brid.gy · 16h일반 영상까지는 무난해서 별 생각없었는데 이번 실험까지 해보니까 너무 오래걸림... 너무너무 오래걸려 스튜디오 사줘 000 0
생각하는 이루왕 @eeruwang.it.21stcentury.day.ap.brid.gy · 17h> [라뤼엘은] 오히려 [제임슨의] 그 주장을 한층 더 확증한다. 라뤼엘의 작업은 특정한 형태의 역사적 시대구분을 뒷받침한다. 이전에는 서사나 세계, 이미지의 형태로 존재했던 유토피아가 1970년대 말에 이르러 소멸했다. 그러나 유토피아는 서사로서는 소멸한 바로 그 자리에서 방법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것이 라뤼엘의 유토피아주의를 이해하는 열쇠다. 그에게 유토피아는 이야기나 세계가 아니라 하나의 기법이다. > [라뤼엘에게] 유토피아란 단순히 철학적 결정에 참여하기를 거부하고, 세계를 창조하기를 거부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it.21stcentury.dayOriginal post on it.21stcentury.day 000 0
생각하는 이루왕 @eeruwang.it.21stcentury.day.ap.brid.gy · 17h> 프레드릭 제임슨은 최근 이렇게 지적했다. “컴퓨터가 널리 도입된 이후로는 위대한 유토피아적 텍스트가 등장하지 않았다. 마지막 작품은 1975년에 출간된 어니스트 칼렌바크의 『에코토피아』로, 그 작품에서는 아직 컴퓨터가 사용되지 않는다.” > "오늘날 유토피아적 텍스트 대신 우리에게 있는 것은 사이버펑크의 자유시장적 망상이다. 사이버펑크는 자본주의 자체가 차이와 다양성의 일종의 유토피아라고 전제한다. 나는 좌파의 이러한 상상력의 실패가 컴퓨터만으로도 ‘총체화’를 ‘알아서 처리’할 수 있다는 가정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it.21stcentury.dayOriginal post on it.21stcentury.day 100 1
생각하는 이루왕 @eeruwang.it.21stcentury.day.ap.brid.gy · 17h라뤼엘 읽다보니 문득 베토벤은 젊을 때부터 귀가 잘 들리지 않았고 그가 한 작곡은 귀로 들리는 (그나마 덜 재현적이라는 음악이라지만) 혹은 시스템적 음악이 아니라 다른 형태의 감각화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000 0
생각하는 이루왕 @eeruwang.it.21stcentury.day.ap.brid.gy · 17h길을 걷다가도 난 네가 들려 돌아보면 아무도 없고 밤새 일을 하다가도 난 들려 모기 너의 소리가 들려 000 0
생각하는 이루왕 @eeruwang.it.21stcentury.day.ap.brid.gy · 18h플리거 유저들이 렌즈 종류부터 사진들 태그를 워낙 잘해놔서 그게 참 도움이 되었었따고 000 0
생각하는 이루왕 @eeruwang.it.21stcentury.day.ap.brid.gy · 18h에이아이 영상 드릅게 말 안듣는데 내 머릿속에는 구도가 있는데 그 방향으로 가길 반항한다. 이거야말로 어떤 의미로 우연적 영상인가 #아무말 000 0
생각하는 이루왕 @eeruwang.it.21stcentury.day.ap.brid.gy · 19h“모든 예술은 고통이 90%, 기쁨이 10%다. 아니, 10%도 너무 많다. 1%!” - 폰 브리젠 011 1
생각하는 이루왕 @eeruwang.it.21stcentury.day.ap.brid.gy · 19h> 그가 앞서 『비사진의 개념』(*The Concept of Non-photography*)에서 말했듯이, “엄밀한 사유의 과제는 오히려 사진에 관한 추상적 이론을—적어도 원리상으로는—정초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철저하게 추상적이며, 세계에 전혀 종속되지 않고 지각과도 무관한 이론이어야 한다.” 어떻게요.... 해봐요 000 0
Reposted by 생각하는 이루왕Silverkey | 은열쇠 🗝️ @silverkey.social · 19h이정도면 설계 불량인것 같은데 왜 이렇게 만들걸까;;; 여기가 부서질까 www.youtube.com/watch?v=dTYJ...youtube.com여기가 부서질까YouTube video by ColorScale 225 5
생각하는 이루왕 @eeruwang.it.21stcentury.day.ap.brid.gy · 20h사실 나 크립 가사 I'm a creep I'm a weirdo 인데 한동안 I'm a widow 인줄 알았었다 013 3
생각하는 이루왕 @eeruwang.it.21stcentury.day.ap.brid.gy · 20h> 빛을 이용해 자신의 ‘피사체’나 그 밖에 눈앞에 놓인 대상들을 재현하는 데 지친 사진가를 상상해 보라. 이 사진가가 빛을 빛 자체로 재현하고자 할 만큼 무모하다고 상상해 보라. 그렇다면 그 빛은 먼 별들에서 오는 빛이 아니라, 별도 없고 아무리 멀리 있거나 감춰져 있다 해도 그 어떤 광원도 없는 빛, 카메라로는 포착할 수 없는 빛일 것이다. 이 사진가는 자신의 기술을 포기하고 다른 기술을 찾아야 할까? 아니면 빛 자체를 포착하기 위해(혹은 어쩌면 유혹하기 위해) 사용하는 각도, 프레임, 시점, 개구부, 셔터를 증식시키도록 […]it.21stcentury.dayOriginal post on it.21stcentury.day 000 0
생각하는 이루왕 @eeruwang.it.21stcentury.day.ap.brid.gy · 21h한국 번역판 www.aladin.co.kr/shop/wproduct.aspx…aladin.co.kr사이클로노피디아 | 레자 네가레스타니모순으로 가득 찬 21세기 초반의 세계를 중동이라는 어두운 구멍으로 빨려 드는 공포스러운 소용돌이로 그려내는 기이한 책이다. 000 0
생각하는 이루왕 @eeruwang.it.21stcentury.day.ap.brid.gy · 21h**책소개** 『Cyclonopedia』는 이란의 철학자이자 작가인 레자 네가레스타니가 쓴 이론소설(theoretical fiction)로 호러 소설이자 사변신학의 저작이며, 악마학의 도감이자 정치적 지하출판물이고, 동시에 철학적 마도서이다. 이 작품은 공포 위에 또 다른 공포가 쉴 새 없이 쌓여 가는 중동을 다룬 이론소설(theory-fiction)이다. 소설가, 철학자, 영화감독들로부터 찬사를 받은 네가레스타니의 이 작품은 중동에서 탄생했으며 동시에 […] [Original post on it.21stcentury.day] 100 1
생각하는 이루왕 @eeruwang.it.21stcentury.day.ap.brid.gy · 25/10/2026> 요컨대 전자가 투명성의 문제라면, 후자는 불투명성의 문제다. 굴절광학은 원근법적 시각, 즉 무언가를 투과하여 보는 방식인 반면, 반사광학은 거울상 또는 양상, 즉 반사하거나 무언가를 바라보는 방식이다. 수많은 양상과 수많은 별칭을 지닌 신을 떠올려 보자. 그는 제우스의 전령인 헤르메스다. 그러나 그에 대응하는 헤라의 전령 이리스에게는 상대적으로 별칭이 거의 없다. 그녀의 역할은 빛을 투과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헤르메스는 양상의 신이자 반사광학의 신이며, 이리스는 원근법적 시각의 여신이자 굴절광학의 여신이다 […]it.21stcentury.dayOriginal post on it.21stcentury.day 000 0
생각하는 이루왕 @eeruwang.it.21stcentury.day.ap.brid.gy · 25/10/2026일단 꾸역꾸역 한번 읽고고 두번읽으면 이해가 올라가고 한번 더 읽으면 이해가 더 올라간다. 그래서 첫번째를 꾸역꾸역이라도 끝내는게 중요하다 000 0
생각하는 이루왕 @eeruwang.it.21stcentury.day.ap.brid.gy · 25/10/2026아니 근데 애초에 무라면 있다는 것도 모르는 데 무가 있다는 것은 무도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무에서 아무 것도 보지 못한다는 것은 결국 무가 있다는 것이고 아예 완전한 없음이라면 없음이란 것도 없어야하는 거 아닌가 000 0
생각하는 이루왕 @eeruwang.it.21stcentury.day.ap.brid.gy · 25/10/2026@kyush@misskey.kyu.sh 그쵸... 계속 이래요 앞에는 이해하다가 갑자기 막 엑셀 밟아서 뭐? 뭐라고? 잠깐 기다려 어둠도 두개야? (지금은 빛도 두개고 어둠도 두개다 나오고 있는데) 아니 잠깐 무는 아무 것도 없는 거고 그럼 밤은 무는 아니지만 아직 없는 건가? 지금 마음속의 혼란 010 1
생각하는 이루왕 @eeruwang.it.21stcentury.day.ap.brid.gy · 25/10/2026나 진심 라뤼엘은 이해를 못하겠어 >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질문은 언제나 다음과 같았다. 왜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이것이 존재하는가? 니체나 키르케고르에게는 다음과 같았다. 왜 무언가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가? 그러나 라뤼엘에게는 이러한 질문 자체가 처음부터 잘못 설정되어 있다. 라뤼엘에게 적절한 질문은 오히려 다음과 같을 것이다. 왜 우리는 무를 바라보면서도 여전히 결코 무를 보지 못하는가? 파르메니데스가 말했듯, 무에서는 아무것도 생겨나지 않기 때문이다. 라뤼엘은 “인간은 밤과 무 사이의 중간에 […]it.21stcentury.dayOriginal post on it.21stcentury.day 100 1
생각하는 이루왕 @eeruwang.it.21stcentury.day.ap.brid.gy · 25/10/2026@kyush@misskey.kyu.sh 비오는 김에 비 그칠 때까지 맥주를 운치있게 편의점 앞에서 안주와 함께 먹기 010 1